책/머니 트렌드 2025

소비 코드가 된 DEI

앗아뵤 2024. 11. 6. 05:00
728x90
반응형

몰락했다고 인식되기까지 했던 미국 캐주얼 의류 브랜드 아베크롬비 앤 피치(이하 아베크롬비)는 2023년 6월부터 2024년 6월 1년간 주가가 450% 정도 올랐다. 이후 조금 하락했지만 2023년 7월 말에서 2024년 7월 말까지 보면 300% 정도 올랐다는 점이 인상 깊다. 더 길게 최근 2년간 추이를 보면 거의 1000% 정도 오른 모습이다. 아베크롬비는 첨단 테크 기업도 아니고 미래 가치를 따질만한 미래 유망 사업도 아닌 100년도 더 된 오래된 패션 기업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누렸지만 이후 10여 년 넘게 긴 하락세를 겪었다. 그럼 어떻게 죽어가던 기업이 갑자기 고공행진을 했을까?

 

사실 패션에 민감한 사람들이라면 아베크롬비의 부활을 2023년 부터 눈치챘을 것이다. 매출도 늘고 1020대가 다시 찾기 시작했다. 2024년 5월 30일 아베크롬비가 발표한 1분기 실적은 순 매출 10억 달러, 영업이익 1억 3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2.1% 증가(분기영업이익률은 12.7%)했다. 회사 역사상 최고의 1분기 실적을 기록하며 주가가 폭등했다. 2024년 6월에 시가총액이 90억 달러에 육박했고, 조정받은 이후 7월 말 기준 약 80억 달러가 됐다. 주가와 실적 모두 상승하며 부활에 성공한 것이다.

 

1020대를 주 타깃 고객으로 삼는 아베크롬비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향수 냄새가 가득한 매장과 성적인 분위기의 백인 모델을 내세워 쿨한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접어든 이후 인종, 사이즈 등의 이슈가 발생했고 다양성과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던 사회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해 2010년대에 몰락했다. 몰락의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회사를 전성기로 만든 일등 공신이었다. 마이크 제프리스는 1992~2014년까지 22년간 CEO로 자기 집권했다. 그는 아베크롬비로 전성기를 누렸고 전성기의 성과에 취해 트렌드변화에 둔감하게 반응했다. 결국 브랜드를 몰락시킨 주범이 되었다. 특히 2006년 1월 <Salon Magazine>과의 인터뷰에서 "젊고, 아름답고, 마른 사람듬란 우리 옷을 입었으면 좋겠다", "뚱뚱한 고객이 매장에 들어오면 물을 흐리기 때문에 엑스라지 이상의 여성 옷은 팔지 않는다" 라는 망언을 했다. 이 발언은 브랜드 불매 운동을 불러일으켰고 몰락의 신호탄이 되었다. 온라인 시대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시대엔 자비가 없다. 2013년에 나온 미국 인터넷 신문인 <Business Insider> 기사에서는 앞선 살롱 매거진 인터뷰의 발언이 다시 언급되었는데, 과거의 일이 다시 현재의 일이 되며 불매 운동과 함께 플러스 사이즈를 제작하라는 청원 운동으로 번졌다. 그리고 1020대에게 온라인상에서 입소문이 퍼지며 브랜드의 이미지가 끝없이 추락했다.

 

아베크롬비는 2016년 미국 고객만족지수에서 고객이 가장 싫어하는 소매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인기가 절정이던 2007년 아베크롬비의 시가총액은 70억 달러 이상 이었는데 하락세를 타며 10억 달러 이하로 줄었고 매각설에도 휘말렸다. 그렇게 망하고 사라져버릴 것 같았던 아베크롬비가 부활한 것이다. 비결은 CEO 프란 호로위츠의 리더십이다. 마이크 제프리스가 실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퇴진한 이후 2년 가까이 신입 CEO를 찾지 못하다가 내부 승진을 통해 홀리스터 사업부 부문장(책임자)이었던 그녀가 2017년 CEO가 되었다. CEO가 되자마자 그녀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재정비했다. 향수 냄새가 가득한 매장의 분위기를 바꾸고, 상의를 벗은 모델과 남녀의 성적 이미지를 강조한 모델 전략을 버렸다. 젊은 백인들이 매장에서 쇼핑하는 이미지에서 모든 인종과 성별을 포용하는 이미지로 변신한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경험을 고객에게 제공하려고 했고 고객에게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했으며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 팔로워를 늘리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를 통해 브랜드의 신뢰를 잃은 고객과 브랜드의 변신을 알지 못 하는 고개들이 아베크롬비의 변화를 알아가게 되었다. 아베크롬비는 DEI 이슈로 몰락기에 들어갔는데 결국 DEI 이슈로 난제를 해결했다. 지금 시대는 확실히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이 소비 코드다.

 

왜 다양성이 '돈'이 되는가?

 

죽어가던 미국 패션의 상징 같았던 갭도 아베크롬비와 마찬가지로 2023년 6월~2024년 6월까지 1년간 주가가 300% 정도 올랐다. 이후 조정을 받았지만 2023년 7월 말~2024년 7월 말까지 1년간 120% 정도 올랐다. 갭의 부활과 아베크롬비의 부활에는 공통점이 있다. 2023년 8월 갭의 CEO가 된 리처드 딕슨은 4개 브랜드(올드 네이비, 갭, 바나나 리퍼블릭, 아슬레타)의 정체성을 트렌드와 시대 변화에 맞게 새롭게 정비했고, 전통적 브랜드를 다시 중심에 배치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경영 혁신을 통해 결과적으로 4개 브랜드 모두 매출이 되살아났고 회사는 흑자로 전환했다. 공교롭게도 리처드 딕슨이 CEO가 된 이후 갭의 주가가 크게 상긍했다. 결국 경영자가 브랜드의 정체성을 시대에 맞게 변화시키고 조직도 혁신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기에 기업 가치가 긍정적으로 평가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도 DEI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리처드 딕슨은 바비 인형으로 유명한 마텔의 위기를 해결한 경영자이기도 하다. 마텔의 대표 브랜드인 바비 DEI 이슈로 위기를 겪었다. 금발에 날씬한 백인 바비 인형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커지며 실적이 나빠졌었다. 마텔은 2010년대 중반부터 흑인 바비, 아시안 바비, 키 큰 바비, 키 작은 바비, 통통한 바비 등을 비롯해 휠체어를 탄 장애인 바비, 젠더 뉴트럴 바비, 시각 장애인 바비 등 다양한 정체성이 깃든 바비를 만들어내며 시장에서 되살아났다. 딕슨은 2000년에 입상해 승진을 거듭하며 President & COO 까지 맡았고, 23년간 마텔에서 일했다. 바비 브랜드를 현대화하고 시장에 적합하게 조정하는 여러 가지 전략을 도입헀으며 바비를 단순한 인형에서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했다.

 

그렇다면 DEI는 미국에서만 적용될까? 미국의 선례를 통해 한국에서는 어떤 기업이 DEI 이슈로 위기를 맞을지, 어떤 기업이 DEI 이슈를 잘 해겨해 부활할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건 결국 돈의 흐름이 되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2023년 11월에 발표했던 보고서 <Lifting financial performance by investing in women>에 따르면, 성평등 수준이 높은 기업이 수익률에서 2% 포인트 더 높았다. 전 세계 1250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2013년부터 2022년까지 MSCI월드 지수를 분석했는데, 성비 균형 정도(5분위)에서 가장 중간인 성비 균등 그룹들의 평균 자산수익률 7.7%였고, 여성 비율이 가장 낮은 그룹은 5.6%, 여성 비율이 가장 높은 그룹은 6.1%였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특정 성별이높은 것보다 균등한 기업이 수익률이 더 높은 것이다. 성비 균형과 자산 수익률의 관계는 국가와 산업 부문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드러났다고 한다. 블랙록을 비롯한 세계적인 자산 운용사에서 자신들이 투자한 기업에 여성 임원의 비중을 높이라는 요구하는 것도 결국 성과(수익) 향상과 인재 확보 및 유지를 위해서다. 글로벌 기업들이 DEI를 중요하게 여기고 대응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인재 확보다. DEI는 곧 투명한 평가와 공정한 보상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우수한 인재일수록 DEI가 갖춰지지 않는 기업에서 일하길 꺼린다. 기업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서,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서 DEI를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분명한 것은 지금 시대에 다양성이돈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여러분의 일상을 간과하지 말길 바란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어디에 살고,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무엇을 사고 싶은지 등은 궁극적으로 트렌드를 이루는 아주 작은 퍼즐이다. 전혀 모르는 기술과 전혀 모르는 세상에서 기회를 찾기보다 이미 알고 계속 관여하는 영역에서 기회를 찾는 것이 효과적이다. 앞서 제시한 트렌드 이슈 모두 일상과 연관된 이야기라는 점을 잊지 말라. 돈은 늘 가까이 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