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 주식시장의 차이점
미국으로 건너온 지 얼마 안 된 투자자의 관점에서 미국 주식시장을 보자면 주변에 보이는 것 모두가 투자할 거리다. 내가 사는 물건, 길에 늘 보이는 광고판, 이용하면 좋을 거라고 소개받은 스마트폰 앱까지 기업이 만들지 않은 것이 없다. 미국은 거대한 자본 시장을 가지고 있고 한국과 달리 사업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초기 단계의 기업도 상장의 문턱을 넘을 수 있어서, 발견하게 된 많은 브랜드와 기업 중에 상장 회사의 비율이 높다. 한국에서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발견해도 비상장 상태인 경우가 많았던 것에 비하면 고무적이다.
미국 기업은 확장성과 경쟁력을 모두 갖춘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다. 그들의 확장성은 큰 내수 시장에서 나온다. 같은 비즈니스 모델로 창업하더라도 미국과 한국은 판의 크기부터 다르다. 아마존과 쿠팡을 비교해보자. 아마존의 시가총액은 2조 달러, 한화로 2800조 원정도다. 한국에서 유사한 사업을 하는 쿠팡은 400억 달러가 채 안 된다. 한화로 50조 원 정도니 아마존이 50배나 크다. 매출액 역시 아마존은 5750억 달러, 쿠팡은 244억 달러인데 한화로 따지면 아마존은 800조 원에 육박하고 쿠팡은 30조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24배 차이다.
또 미국 기업의 경쟁력은 언어와 사람에서 나오는 것 같다. 큰내수 시장을 장악하면 그 기업은 이미 엄청난 규모와 유명세를 자랑하게 된다. 그리고 캐나다, 영국을 비롯해 같은 영어권 국가로 확장한다. 사실 비즈니스 업계에서는 지역을 막론하고 영어를 쓰지 않는 곳이 없다. 한국 투자자가 영어권이 아닌 제3국에 투자할 때도 협상 테이블의 언어는 공용어인 영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전 세계가 미국의 제품과 서비스를 사랑해서인지, 미국의 성공 방정식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인지 미국의 세계화 행보는 거침없다. 상장 초기 단계에서부터 해외 진출은 당연한 일로 치부한다. 한국 중소기업이 대부분 대기업의 협력 업체로서 대형 고객사의 행보나 업황에 좌우되는 것에 비하면 참 다르다.
이렇다 보니 수많은 인재가 미국으로 간다. 영어로 일하려고 하고 미국 대학교에 들어가고, 실리콘밸리나 월스트리트에서 창업하는 것을 꿈꾼다. 또한 미국 회사 소개서의 특징 중 하나는 넓은 지면을 할애해서 주요 임원진을 소개한다는 점이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으로 구성된 임원진의 사진과 과거 경력까지 적혀 있다. 그런 면이 상당히 화려하고 믿음직스럽다. 대표이사나 창업자 정도만 소개하는 한국과는 다르다. 주가는 기업의 가치를 따라 움직이고 기업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 인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미국 주식과 한국 주식은 투자하는 방법도 차이가 난다. 한국은 네이버페이 증권에 접속하면 상장 회사의 주식 담당자 연락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표 전화로 연결되더라도 담당자와 통화하고 싶다고 하면 주식 담당자와 직접 대화할 수 있다. 회사도 대부분 수도권에 있고 멀어도 부산, 제주도라서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대면 미팅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다. 인구 기준으로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는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휴스턴 순서다. 2대 도시인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며 실제로 최근 미팅을 요청한 회사는 애리조나주, 캘리포니아주, 워싱턴주로 각각 멀리 떨어져 있었따. 심지어 미국 상장 기업이고 미국의 매출액 비중이 가장 높지만 본사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는 회사도 있었다. 대면 미팅은 어렵고 이메일로 몇 차례 소통한 후 화상 회의를 하는 것이 일상적이다. 같은 나라지만 시차도 생각해야 한다. 또 코로나19 이후 원격 근무가 정착되면서 해당 회사의 주식 담당자라 하더라도 본사 사무실에 근무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렇게 연락이 덜 닿는 데에는 근원적인 이유가 있다. 미국 기업은 한국 기업보다 정보를 훨씬 투명하게 공개하기 때문이다. 투자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보라면 작은 것이라도 적절한 때에 공시한다. 모두에게 같은 시각, 같은 방법으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일례로 가이던스라고 하는 실적 목표 또한 대부분의 기업이 투자자에게 제시하며, 분기별로 달성 가능성이나 달성을 위한 전략이 달라지면 수정해서 다시 알려준다. 한국은 경쟁사들의 위협이나 투자자들의 원성을 걱정해 목표를 공개하지 않거나 주식 담당자 또는 재무분야 임원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투자자 미팅도 마찬가지다. 개인 투자자에게 많이 받는 질문이 "기업 탐방을 가면 어떤 일을 하나요?", "개인 투자자도 기업 탐방을 갈 수 있나요?" 일 정도로 한국에서는 기관 투자자와 개인 투자자에 대한 대우가 다르다. 법적으로 그리하면 안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관 투자자에겐 공공연하게 중요한 정보가 비밀리에 또는좀 더 빠른 시기에 제공된다. 미구근 홈페이지에 그들이 언제 어디에서 어떤 미팅을 했는지를 자료와 함께 공표한다. 가능하면 행사에서 녹화 또는 녹음된 정보와 그것을 받아 적은 녹취록도 제공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긴박하게 통화하거나 단독 미팅을 요청하는 일이 드물다. 미국에서는 나 역시 개인 투자자와 같은 사정이므로 신뢰해도 좋다.
미국 사람들의 주식시장에 대한 시각도 다르다. 투자로 경력을 쌓고 싶은 젊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너는 왜 개별 주식 분석을해? 그냥 지수 투자를 하는게 더 낫지 않아?" 라고 질문해서 놀랐다. 투자에 관심이 상당히 많은 편이어도 개별 주식을 분석해서 투자하는 일은 하지 않을뿐더러 주변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보기술 업종을 포괄하는 나스닥 지수를 필두로 미국 주식은 지수에만 묻어놔도 10년간 몇 배씩 올랐으니 그럴 만하다. 어떤 종목의 이야기를 꺼내도 S&P500이나 나스닥 지수와 비교해 더 많이 성장했는지 아닌지부터 찾아본다. 아주 전문적인 펀드 매니저를 제외하면 주식을 이야기할 때 엔비디아, 테슬라 같은 시가총액 상위 종목부터 말한다. 그 종목들은 지수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거나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두 나라에서 주식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느끼고 나니 한 시대를 풍미한 이차전지 기업들, 초전도체 테마주들, '태조이방원(태양광, 조선 ,이차전지, 방위산업, 워낮력)' 같은 재밌는 줄임말들이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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